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
먼저 룩소르 신전을 보겠습니다. 제19왕조를 이끌었던 불패대왕 람세스 2세. 즉, 가장 전쟁을 잘했고 좋아했던 전쟁영웅 람세스 2세의 신전이라고 불립니다. 기원전 1260년경에 완공이 되었고요. 원래 있던 신전을 여러 왕이 증축을 했고 마지막을 람세스 2세가 담당을 했고, 또 람세스 2세가 워낙 영토를 넓힌 훌륭한 왕이기 때문에 보통 람세스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기둥숲이 특히 유명해서 열주 마당, 열주 홀은 물론 봉원실과 내성소 마저도 전부 열주 마당으로 기둥을 가득 채워서 열주 마당으로 대신을 하게 됩니다.
람세스 3세의 신전 - 카르나크 신전
또 두 번째 중요한 신전이 카르나크 신전이라고 하는 신전이죠. 제19왕조 때 람세스 3세의 신전이었습니다. 처음에 시작은 기원전 1990년경부터 중왕국 때부터 신전이 공사가 됩니다. 우리가 아까 텍스트 원고에서 중왕국 신전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그때 역시 지어지게 되고 나중에 람세스 3세 때 기원전 1100년경, 100년대 중반 경에 마지막 완공을 이루게 됩니다. 카르나크를 지키는 3대 신인 아문, 무트, 콘스 이 세 신에게 봉원된 신전이고, 이에 따라 3개의 영역으로 각각 이루어지게 됩니다. 근데 현재 도면을 보시면, 몬투 아문 무트 세 영역으로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봉헌된 신 이름과 조성된 영역의 신 이름 사이에 작은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죠. 아문과 무트는 봉헌신과 영역이름 사이에 불일치가 없고 잘 일치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몬투와 콘수 사이의 불일치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죠. 아문신은 그의 아내인 무트 여신과 여기에서 나온 두 아들인 콘수와 몬투와 함께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이때 봉헌은 아문, 무트, 콘수에게 된 것인고 실제 신전의 영역 조성은 아문, 무트, 몬투에게 조성이 된 것이죠. 이 과정에서 봉헌된 신인 콘수 대신에 실제 영역은 다른 아들인 몬투로 교체가 된 것이죠. 그리고 어머니 신인 무트 여신과 아버지 신인 아문신은 실제 봉헌된 신과 영역 사이에 불일치가 없게 되죠. 아들 사이의 이런 불일치는 아마도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실제 고고학을 통해서 신전을 발굴한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아직 완전히 통일되지 않은 과정에서 나온 현상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게 룩소르 신전의 평면도입니다. 제18왕조 9대왕 아미노피스 3세 때 시작해서 19왕조 3대왕 람세스 2세가 완공을 하게 됩니다. 오벨리스크와 스핑크스가 놓여 있는 행렬로, 행렬로를 따라서 외부에서 진입을 하다가 탑문을 맞게 되고요. 탑문 양 옆에 오벨리스크를 한 개씩 세웠고요. 탑문을 통과하면 앞마당이 나오게 되는데 앞마당에 두 열의 기둥이 3면, 거의 4면을 그대로 에워싸면서 열주 마당을 이루게 되고요. 거기를 다시 지나면 기둥이 양 옆으로 도열해서 한 가운데 통로를 낸 열주 홀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이제 앞마당이 한 번 더 나오고, 이 앞마당 역시 3면을 두 열의 기둥이 뺑 돌아가면서 지은 열주 마당이고요. 그다음에 이제 봉원실, 내성소가 이런 중요한 실들이 차례로 나오는데 이 실들도 보면 전부 기둥으로 가득 차 있고, 심지어 그 속에 있는 창고들 이런 데까지도 기둥으로 지어지게 되고요. 그래서 모든 시설들이 전부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그런 대표적인 기둥 건축의 신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룩소르 신전의 모습
룩소르 신전은 공중 장면도 보기에 따라서는 많이 파괴되었지만 또 보기에 따라서는 많이 보존이 되어 있기 때문에 공중사진들을 많이 찍는데 그 중에 하나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탑문이고요. 여기가 이제 전체 출입구죠. 여기가 전체 출입구이고, 스핑크스로를 지나서 탑문을 지나면 열주 마당, 열주 홀에서 본체로 들어가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룩소르 신전 탑문 앞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와 거석상. 거석상 앞에 오벨리스크가 있고, 탑문을 통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건 룩소르 신전 내에 있는 페스티벌 코트라고 하는 열주 홀의 모습으로 되어 있는 기둥 모습입니다. 이것도 식물 형태의 주두를 돌로 모방해서 만든 장식적인 모습이고요. 태양의 마당이라고 불리는 그런 신전이고요. 카르나크 신전의 전체 배치도를 보면, 이 위에서부터 콘스의 영역, 아문의 영역, 그다음에 무트의 영역, 이렇게 세 영역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요. 중심에 제일 큰 건 아문의 영역이죠. 아문의 영역이어서 아문 대신전이 중심을 차지하고요. 이 밑에 있는 게 무트의 영역에서는 신성한 호수라고 하는 호수가 중요하게 됩니다. 이 호수는 아문의 영역에도 하나씩 있고요. 이 물 요소는 전 세계의 공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전통 건축에서도 많이 썼었고, 특히 종묘 건축에서는 많이 쓰는. 기독교에서도 세례당이 물 요소를 사용한 건물 형식이고요. 우리나라도 보면 사찰, 서원 이런 데 다 물 요소들이 있었는데 이집트 신전에서도 물 요소는 중요했고요. 그래서 이건 왜 물 요소가 중요했는지는 나일강의 연속성이라고 해서 앞에서 설명을 많이 드렸고요. 그래서 신성한 호수라고 하는 sacred lake라고 하는 호수를 하나씩 가진 점이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카르나크 신전 가운데 아문의 영역에 속하는 전경을 성스러운 호수 앞에서 찍은 전체적인 모습입니다. 이제 거대한 이 구조물이 탑문이고요. 여기에 오벨리스크도 보이고, 기둥으로 세워진 중심 공간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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